INSIGHT3차례
제7부 · 규제와 다음

제21장: 월요일 아침의 실행 매뉴얼

어느 평범한 월요일 아침의 한 시각, 여섯 개의 서로 다른 책상 위에서 같은 일이 시작된다. 정부의 어느 회의실에서는 시행령 한 줄을 어떻게 쓸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플랫폼의 제품 회의실에서는 검색창에 무엇을 끼워 넣을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어느 작은 상점의 주인은 상품 등록 화면을 열고 빈칸 하나를 채워 넣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어느 카드사의 임원실에서는 약어 다섯 개가 적힌 표 한 장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느 평범한 스마트폰의 설정 화면에서는 손가락 하나가 토글 위에서 멈춰 있다. 그리고 어느 법률사무소의 책상 위에서는 새 자문 분야의 첫 번째 의견서가 작성되고 있다.

여섯 군데의 책상은 서로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같은 시각에 내리는 결정들이 모여, 2028년 어느 화요일 아침 송파의 그 보냉백을 만든다. 혹은, 만들지 않는다.

이 책은 스무 개 장에 걸쳐 그 화요일이 오게 하는 조건과 오지 못하게 막는 조건을 따져 왔다. 이 마지막 장은 그 조건들을 만드는 자리, 즉 여섯 개의 책상으로 시선을 옮긴다. 거듭 등장하는 '월요일'은 비유라기보다 일정에 가깝다. 한 주의 업무가 시작되는 아침, 각자의 책상에서 가장 먼저 집어 들어야 할 일이라는 뜻이다.

여섯 개의 절은 서로 다른 여섯 가지 일을 적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그것은 같은 한 가지 일을 여섯 자리에서 나눠 맡은 것이다. 이 책이 스무 개 장에 걸쳐 해부해 온 바로 그 일, '신뢰를 만드는 일'이다. 규제 당국은 신뢰의 규칙을 만들고, 플랫폼은 신뢰의 구조를 만들고, 판매자는 신뢰의 데이터를 만들고, 결제사는 신뢰의 레일을 만들고, 소비자는 신뢰의 한도를 정하고, 자문 변호사는 신뢰를 문서로 바꾼다. 어느 한 책상의 일이 빠지면, 송파의 그 결제 버튼은 끝내 눌리지 않는다. 그러니 아래 여섯 절은 서로 다른 여섯 권의 매뉴얼이 아니다. 한 권의 매뉴얼이 가진 여섯 개의 페이지다.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단서만 남겨 두자. 아래에 적힌 모든 것은 각 책상에게 '가능한 선택지'이지, 그들이 정치적·상업적으로 반드시 골라야 한다는 판단이 아니다. 이 책은 스무 개 장에 걸쳐 한국이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으려 조심해 왔다. 이 마지막 장에서도 그 태도는 바뀌지 않는다. 다만 쓸 수 있는 도구를 모두 펼쳐 놓고,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순서로 집어 들지를 보여 줄 뿐이다.

1. 규제 당국의 책상

제18·19장 참조. 부처별 집행 세부는 부록 B에 있다.

대한민국 세종시 정부 청사의 한 회의실. 월요일 아침의 정책 테이블 위에는 거대한 지정학적 교착 상태가 가로놓여 있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모델로 삼아 거대 독점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하고 자사 우대나 끼워팔기 행위를 원천 금지하려던 한국판 '온라인 플랫폼 독점 규제법'의 제정 시도는 사실상 무기한 동결되었다. 이는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거센 반발 때문만은 아니다. 2025년 후반의 통상 외교 협의 과정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를 비롯한 워싱턴 정가가 제기한 강력한 통상 압박과 교역 보복 우려가 경쟁 당국의 의지를 꺾어놓았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을 한가운데 주입해 완결 루프를 강제로 닫았던 중국식 모델은 물론이거니와, 강력한 입법으로 사후 규제를 가하려던 사법적 시도마저 서울과 워싱턴 사이의 거대한 통상 외교 게임의 인질이 되어 멈춰 선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 쇼핑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행위자는 국회의 입법 전쟁이 끝나거나 외교적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시장의 시계를 멈춰 주지 않는다. 거대 플랫폼들이 소비자의 구매 의도와 결제 권한을 조용히 독점해 들어가는 동안, 법률 제도는 늘 그래 왔듯 지나간 참사를 수습하는 사후 대응에만 머물러 있다. 따라서 규제 당국이 이번 주 월요일 아침에 당장 집어 들어야 할 실무 레버는 국회의 입법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행정부의 손에 쥐어진 행정 입법권과 유권해석 권한을 즉시 가동하여 시장의 '법적 진공'을 깨뜨리는 것이다. 거창한 특별법이 없더라도 현행 개인정보 보호법과 전자금융거래법의 세부 조항들을 에이전틱 커머스라는 새로운 사실관계 위에 매끄럽게 번역해 얹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위험은 통제할 수 있다.

거의 우연에 가까운 일이지만, 한국은 최근의 다른 사고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제도적 장치 대부분을 이미 만들어 두었다. 정산 자금 보호 조항은 티메프 사고에서 나왔다. 한 플랫폼이 무너지며 판매자의 미지급 자금까지 함께 가져갔던 그 사고였다. 자동화된 결정 대응권과 데이터 전송요구권 체계는 2020년대 중반 개인정보 보호 법제 개정에서 나왔다. 전자상거래법의 중개업자 책임 조항은 수년째 법조문에 있다. 에이전트는 새로운 법체계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시행령과 유권해석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이 법체계들이 '사람을 대신해 행동하는 기계'에도 적용된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그 일을 맡을 손은 규제 챕터에서 이미 만난 이들이다. 금융 영역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그 집행 기관인 금융감독원, 공정거래 영역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개인정보 영역에서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다. 그리고 단 하나의 결단을 위해 마지막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법무부가 자리에 앉아 있다. 다섯 결단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어느 결단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정렬한 것이다.

| # | 결단 사항 | 주관 부처 | 수단 | 입법 필요? | 시간창 |

|---|---|---|---|---|---|

| 1 | 에이전트 결제 경계 — 기계가 누른 클릭이 '자동화된 결정'에 해당하는지, 7일 청약철회권이 유지되는지, 거래 가맹점은 누구인지 | 개보위·공정위 공동 | 전자상거래 시행령에 얹는 유권해석 | 불필요 | 즉시 |

| 2 | 에이전트가 보관하거나 사전 승인받아 집행하는 자금의 정산·에스크로 보호 | 금융위원회 (금감원 집행) | 이미 통과된 정산 개혁법의 하위 시행령 | 불필요 | 2026년 안 |

| 3 | 유통·커머스 분야 데이터 전송요구권 신설 지정 (현재 보건의료·통신·에너지만 지정) | 개인정보보호위원회 | 의무 주체·대상 정보를 정하는 시행령 개정 | 불필요 (시행령) | 2026년 말~2027년 |

| 4 | 플랫폼 중립성 — 플랫폼의 자체 에이전트가 자사 상품을 우대해도 되는지 | 공정거래위원회 |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심사 지침 개정 | 불필요하나 법원 판결로 약화 | 2026~2027년 |

| 5 | 에이전트 책임 프레임워크 — 자율 에이전트가 오류를 일으켰을 때 누가 책임을 지는가 | 과기정통부·법무부 | 새 본 법률, 중간 다리 마련 | 필요 | 2027년 이후 |

당국이 가장 먼저 내려야 할 결정은 개정 개인정보 보호법 제37조의2에 명시된 '완전히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한 결정에 대한 대응권'의 구체적인 유권해석 지침을 배포하는 것이다. 현행법은 자동화된 결정이 개인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 거부권을 주지만, 계약의 체결 및 이행을 위한 경우에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에이전트를 통한 자율 결제는 소비자가 사전에 요청한 계약의 이행에 해당하므로, 실무적으로 소비자는 기계의 구매 행위를 '거부'하기보다 기계가 왜 특정 상점의 제품을 선택했는지 그 투명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제2항)에 그치게 된다. 당국은 에이전트 사업자가 이 설명 의무를 어떤 규격으로 이행해야 하는지, 즉 알고리즘의 편향성과 유료 광고 슬롯의 개입 여부를 소비자에게 어떻게 명확히 고지해야 하는지 세부 지침을 조기에 확정해야 한다. 또한 2025년 2월에 발효된 전자상거래법상 온라인 눈속임 설계(다크패턴) 규정(제21조의2)이 인간의 눈을 속이는 '시각적 인터페이스'에만 머물러 있는 한계를 인식하고, 에이전트가 읽어 들이는 정형 데이터 내부에 숨겨진 기만적 명령문까지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규제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더욱 강력하고 즉각적인 행정 카드는 '유통·커머스 분야 마이데이터(데이터 전송요구권)'의 신설 지정이다. 한국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35조의2를 통해 개인정보 전송요구권을 법제화했으나, 현행 시행령상 제3자 전송 의무를 지는 분야는 보건의료, 통신, 에너지 세 분야에 제한되어 있다. 유통과 상거래 데이터는 여전히 도입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장기 후보지로 밀려나 있다. 유통 마이데이터가 시행령으로 풀리지 않는 한, 소비자의 누적된 구매 이력과 취향 데이터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기존 거대 플랫폼의 폐쇄적인 방어벽 내부에 독점적으로 종속된다. 중소 스타트업들이 소비자 주권형 독립 에이전트를 만들려 해도 접근할 데이터의 원천이 차단되는 구조다. 국회를 거칠 필요도 없이 대통령령 개정만으로 유통·상거래를 제4의 전송 분야로 신설 지정하는 결단이야말로, 플랫폼의 데이터 독점을 해제하고 진정한 에이전트 경쟁을 촉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행정적 처방이다.

이 다섯 결단을 한 자리에서 보면 한 가지 그림이 떠오른다.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는 1번, 가장 어려운 4번, 그리고 외부에는 안 보이지만 전체를 떠받치는 3번이 모두 새 법률 없이 행정 권한 안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행정부가 '플랫폼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섯 결단 가운데 넷은 부처가 이미 손에 쥔 권한만으로 시작할 수 있고, 그 넷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한국 시장은 외산 표준의 일방적 수입국으로 떨어지는 결말을 피할 수 있다. 행정부의 기다림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남이 먼저 정한 규칙과 외산 표준에 한국 시장의 뼈대를 내어주겠다는 또 다른 결정일 뿐이다.

당국의 책상 위에 시행령 한 줄이 놓이는 그 시각, 또 다른 책상에서는 이미 다른 일이 진행되고 있다. 그곳은 규칙이 정해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규칙이 정해지든 정해지지 않든 자신의 답을 내야 하는 자리, 플랫폼의 책상이다.

2. 플랫폼의 책상

제9·12·16·17장 참조. 플랫폼 실행 체크리스트와 결제 레일 세부는 부록 B와 D에 있다.

대한민국 분당 정자동과 테헤란로에 위치한 거대 IT 기업의 제품 전략실. 월요일 아침의 회의실 스크린에는 얼핏 보기에는 축복 같지만 실상은 시한폭탄과 같은 상반된 지표들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다. 네이버의 독립형 쇼핑 앱은 2026년 초 자체 커머스 전면에 AI 쇼핑 비서를 개시한 뒤 사용자 지표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경영진은 이 급격한 성장의 배경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진단하고 있다. 이 반등은 자사 에이전트의 기술적 완성도가 대중을 매료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시장을 지배하던 경쟁사 쿠팡이 2025년 가을 내부 고위 개발자의 마스터 키 남용으로 3,750만 명에 이르는 고객 정보를 유출당하는 신뢰 사고를 일으킨 직후 터져 나온 반사이익, 즉 보안 난민들이 몰려든 일시적 착시 현상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네이버가 자사 에이전트를 통해 만들어 낸 실제 거래 결제 규모는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모체 트래픽과 페이 거래액 안에 묻혀 있을 뿐, 그 자체만 따로 떼어 본 수치는 아직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은 민주주의 세계에서 에이전틱 커머스를 완수하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구조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검색 포털과 스마트스토어 마켓플레이스, 그리고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라는 결제 지갑을 단일 기업의 성벽 내부에 수직 계열화해 둔 덕분이다. 미국의 똑똑한 에이전트들이 결제를 진행할 때마다 서로 다른 개발사, PG사, 카드사의 파편화된 이음새를 넘나들다가 신뢰의 균열을 일으키며 장바구니를 엎어 버리는 것과 대조하면 엄청난 아키텍처적 강점이다. 그러나 발견과 결제가 처음부터 같은 안방 안에 있다는 이 '이음새 없음'은, 동시에 자사 에이전트가 자사 쇼핑몰 상품이나 자사 마진율이 높은 광고주 제품만을 알고리즘 상단에 노출하는 '자사 우대'의 강력한 유혹이자 독과점적 위험의 실체이기도 하다.

더욱이 이 모순을 제어할 법적·제도적 경계선은 흐려져 있다. 2025년 10월 대법원은 공정위가 네이버의 쇼핑 검색 자사 우대 행위에 부과한 과징금 처분을 파기환송했다(2023두32709). 시장 지배적 플랫폼이라 해서 경쟁사 제품을 자사 서비스와 완전히 동등하게 대우할 포괄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며, 행정 당국은 막연한 추정을 넘어 구체적 경쟁 제한 결과를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플랫폼 사전 규제법마저 통상 외교 문제로 보류된 상황에서, 사법부의 판례마저 플랫폼의 알고리즘 방어권을 강화해 주자, 기업들은 자기 에이전트의 내부 두뇌를 통제할 광범위한 재량을 쥐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랫폼의 기획자들이 이번 주 월요일 아침에 결단해야 할 진짜 전략은 자사 우대 판결을 방패 삼아 알고리즘의 성벽을 더욱 높이 쌓는 폐쇄적 락인(Lock-in) 전략이 아니다. 네이버 전체를 떠받치는 가장 거대한 자금줄인 검색 광고 비즈니스(2024년 매출 약 3조 2,300억 원)는 '사용자만을 위해 정직하게 작동하는 에이전트' 모델과 구조적으로 정면 충돌한다. 인간의 눈이 아닌 기계 에이전트가 데이터를 스캔하기 시작하면 판매자가 돈을 주고 산 상단의 스폰서 광고 슬롯은 '광고 노이즈'로 분류되어 우회당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판매자를 위한 광고용 에이전트를 별도 설계하고, 카카오가 차세대 AI 비서를 카카오톡 대화창 안과 외부 채널로 결합하려는 시도는 이 발견 비용의 파탄을 막기 위한 다급한 자구책이다.

플랫폼이 해야 할 진짜 일은 단기적인 광고 수익이나 자회사 페이의 우대 조치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타사의 독립적인 쇼핑 에이전트나 기술 파트너들이 자사 마켓플레이스의 상품 카탈로그와 결제 레일을 자유롭게 호출하고 연동할 수 있도록 머신 리더블(Machine-readable) 인터페이스의 API를 투명하게 개방하는 것이다. 신뢰가 새어 나가지 않는 안방 성채는 당장 안전해 보이지만, 기계의 오작동이나 또 다른 보안 참사가 터지는 순간 소비자가 생태계 전체를 통째로 등 돌리게 만드는 파멸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알고리즘의 깊은 신경망 내부에서 일어나는 의사결정의 과정을 사후에 검증 가능하도록 투명성을 확보하는 구조적 아키텍처를 짜는 것만이, 장기적으로 한 사회 전체가 기계에게 주머니 속 지갑 열쇠를 완전히 위임하도록 설득해 내는 유일한 열쇠다.

두 가지 시그널을 함께 읽어 둘 만하다. 한국 최대 메신저 플랫폼 산하의 한 결제사가 글로벌 크립토 결제 표준 재단의 창립 이사사로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또 다른 거대 플랫폼은 자사 모바일 검색바 안에 에이전트를 상시 고정 배치하고, 능동형 추천 모듈을 통합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둘은 같은 회사가 아니지만, 같은 시장 안에서 같은 시간을 두고 서로 다른 방향에 옵션을 걸어 두는 동선이다. 한 곳은 결제의 기계 쪽 미래에, 다른 한 곳은 발견의 사용자 쪽 미래에 자기 자리를 먼저 잡아 두었다. 다른 플랫폼들이 월요일 책상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어느 쪽 옵션도 갖지 못한 채 그 두 회사가 만들어 둔 미래에 따라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자기만의 옵션을 같은 시간 창 안에서 잡을 것인가다.

플랫폼이 자기 구조를 다듬는 동안, 그 구조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책상도 함께 움직인다. 플랫폼의 결정이 자신을 거인의 동맹으로 만들지 약탈자의 표적으로 만들지를 결정하는 그 자리, 판매자의 책상이다.

3. 판매자의 책상

제11·17장 참조. 단계별 판매자 체크리스트는 부록 B, 기계가 읽는 카탈로그의 요건은 부록 A에 있다.

대한민국 패션의 중심지인 동대문 상가, 혹은 전국 방방곡곡의 골목 상권에 위치한 영세 소상공인들의 사무실 책상. 월요일 아침 모니터 화면에는 이들의 생계를 뒤흔드는 차분한 생존 방정식이 켜져 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해 사다리를 타고 성장한 누적 판매자 수는 2023년 중반 기준 이미 57만 명을 넘어섰고, 2024년 한 해 동안 이들이 만들어 낸 스마트스토어 및 연계 유통 총 거래액은 50조 원을 돌파한 상태다. 그러나 이 수십만 명의 작은 판매자들을 지탱해 오던 이커머스의 근본적인 문법이 송두리째 파기되고 있다. 지난 30년간 온라인 상거래의 유일한 지향점은 소비자가 화면을 스크롤하며 둘러보고 충동구매를 일으키도록 '잘 지은 스토어 웹페이지'와 세련된 비주얼 디자인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스토어 페이지 자체가 목적지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나 인공지능 쇼핑 에이전트는 인간처럼 스토어 디자인을 감상하지 않으며, 감성적인 마케팅 문구에 감동하지도 않는다. 기계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필요한 핵심 데이터 필드, 즉 실시간 최저가, 구체적인 스펙 규격, 물류창고의 실시간 재고, 가공되지 않은 별점 평점의 텍스트뿐이다. 판매자가 밤을 새워 다듬은 화려한 이미지 상세 페이지는 기계에게는 필요한 정보 추출을 방해하는 '노이즈'에 불과하다. 발견과 구매의 주체가 기계로 수렴되는 세상에서, 상품의 핵심 정보가 정형 데이터로 분리되지 않고 이미지 파일 내부에 통째로 박혀 있는 제품들은 에이전트의 추천 레이더에서 소리 없이 누락된다. 자본력이 부족한 작은 가게들이 시스템에 의해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는, 기술이 만들어 낸 잔인한 소외 장벽이다.

그러나 이 우려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실제 증거가 무엇을 말하는지 한 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2024~2025년에 걸친 한 해 동안 한국 온라인 상점 8,149곳, 거래 4,467만 건을 분석한 한 연구는 알고리즘 큐레이션이 오히려 '가장 작은' 판매자를 가장 크게 끌어올렸다는 결과를 보였다. 소형 판매자의 매출은 약 16퍼센트 증가했고 거래량은 약 36퍼센트 증가했으며, 대형 판매자의 증가폭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기계 큐레이션이 작은 상점의 이름값 부족을 부분적으로 보완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소형 판매자에게 보내는 첫 처방은 직관에 반한다. 가독성 작업을 플랫폼이 대신하게 두면 된다. 판매자가 두려워했던 그 거인이 오히려 가장 큰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이커머스 솔루션 생태계는 이 거대한 격변의 징후를 이미 포착했다. 국내 최대 쇼핑몰 호스팅 기업인 카페24가 2026년 초 중소 판매자의 이미지 기반 상세 설명을 AI 포털과 에이전트가 자동 크롤링해 정형 데이터 규격으로 신속히 변환해 주는 솔루션을 출시하고, 이를 '소상공인의 AI 시대 생존 전략'이라 선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중소 상인들이 이번 주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해결해야 할 실무는 상세 페이지의 디자인을 화려하게 바꾸는 구시대적 감각의 낭비가 아니다. 자사의 상품 카탈로그 전체를 에이전트가 단 몇 초 만에 완벽하게 해독하고 인용할 수 있도록 '기계 가독성(Machine-readability)' 구조로 전면 개편하는 일이다. 그 체크리스트는 짧고, 순서가 명확하며, 비싸지기 전에 먼저 싸게 시작된다. 첫째, 이번 주에 무료로. 입점한 플랫폼이 제공하는 자동 정형 데이터 기능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플랫폼이 제공하는 모든 상품 속성 필드를 빠짐없이 채운다. 데이터의 완결성이 에이전트가 보상하는 랭킹 신호다. 자신의 노동 몇 시간과 0원의 비용, 그리고 소형 판매자에게는 단연 가장 높은 수익률의 행동이다. 둘째, 역시 이번 주에 무료로. 가격과 재고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유지한다. 셋째, 이번 달에 저렴하게. 플랫폼이 제공하는 생성형 엔진이나 에이전트 가독성 기능을 켜고, FAQ 항목에 실제 고객에게 들은 질문을 채워 넣는다. 넷째, 자체 쇼핑몰 운영자나 해외 직접 판매자라면 글로벌 상품 식별자를 추가·검증하고, 에이전트 발견 파일을 게시하며, 주요 검색 쇼핑 채널에 깨끗한 피드를 제출하면 된다.

다만 장밋빛 해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비용은 실재한다. 단지 그 비용이 떨어지는 자리가 모두가 걱정했던 곳이 아닐 뿐이다. 그 비용은 '중간 규모'의 판매자에게 떨어진다. 플랫폼 우산을 떠나 독립 쇼핑몰을 차렸고, 이제 요구 사항이 서로 다른 두세 개의 에이전트 생태계에 걸쳐 상품 데이터를 유지해야 하는 부류다. 그리고 노 브랜드 또는 핸드메이드 제품의 제조자, 즉 신원의 닻이 될 제조업체 바코드가 없는 부류에게도 떨어진다. 따뜻한 글솜씨와 정성스러운 온기로 고객을 맞이하던 세일즈 문법을 버리고, 설득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 인간이 아닌 차가운 소프트웨어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소상공인의 월요일은 시작된다.

그러므로 판매자가 자신의 책상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간단해진다. '내 카탈로그는 누구를 위해 쓰여 있는가.' 지난 30년의 답은 명확했다. 화면 앞 사람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다음 30년의 답은 다르다. 화면 앞 사람을 대신해 카탈로그를 읽어 줄 기계가 깨끗하게 파싱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기계가 자신의 사용자를 위해 안심하고 추천할 수 있도록 쓰여야 한다. 사람을 위한 카탈로그와 기계를 위한 카탈로그가 다른 카탈로그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같은 카탈로그가 두 독자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첫 번째 독자가 사람에서 기계로 옮겨 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기계가 상품을 잘 읽어 낸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거래가 완결되지는 않는다. 데이터가 결제로 바뀌는 그 짧은 구간, 약어 다섯 개로 가득한 표 한 장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또 하나의 책상이 있다. 결제사의 책상이다.

4. 결제사의 책상

제8·10·15장 참조. 결제 레일 분기 시나리오와 데이터 표는 부록 D, 프로토콜의 기초는 부록 A에 있다.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금융가에 위치한 카드사 및 금융 핀테크 플랫폼의 임원실 책상. 월요일 아침의 테이블 위에는 글로벌 카드 네트워크와 테크 랩들이 쏟아낸 차세대 결제 프로토콜 명세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에이전틱 커머스의 가장 거대한 장벽인 '결제 단계'를 뚫기 위해 인프라는 시장의 예측보다 빠르게 깔리고 있다. 글로벌 카드사 비자(Visa)는 카드 소유주를 대신해 AI 에이전트가 결제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사전 준비 프로그램을 발표했고, 한국의 주요 카드사 여러 곳이 2026년 봄 이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렸다. 마스터카드 진영에서도 같은 시기 한국 시장에서 교차 검증된 거래 한 건이 처리되었다. 모빌리티 가맹점과 토큰 인프라 제공사가 관여한 거래였다. 암호화폐 결제 진영에서는 리눅스 재단 산하에서 스테이블코인 기반 에이전트 결제 표준인 'x402' 프로토콜을 출범시켰고, 이 핵심 의사결정 테이블에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한 결제사가 창립 이사사로 서명하며 자리를 선점한 상태다.

이러한 기술 시연의 이면에서 결제사의 실무 책임자들이 이번 주 월요일 아침에 내려야 할 진짜 판단은 특정 프로토콜의 승리를 점치는 도박이 아니다. 현재의 에이전트 결제 표준은 경쟁을 통해 하나만 남는 단일 경쟁 관계가 아니라, 유통 생태계의 각 마디에서 층층이 중첩되며 '공존하는 관계'다. 어느 진영의 규격을 자사 시스템에 이식하느냐에 따라 기업이 감당해야 할 적용 법령, 정산 구조, 분쟁 발생 시의 법적 책임 소재가 달라진다. 글로벌 표준이 한국의 외국환거래법 및 금융위원회의 보안 규제 규격과 부딪힐 때 그 위험의 균열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서류의 본질이다.

두 개의 지갑, 한 자리에서 만나는 분기

이 전장에서 결제사가 명심해야 할 첫 번째 원칙은 '어느 하나의 표준에 회사 전체를 걸지 말 것'이다. 에이전트 결제는 하나의 레일 위만 달리지 않는다. 두 종류의 레일이 동시에 깔리고 있고, 둘은 시스템 뒤편에서 공존하며, 어느 레일을 탈지는 어느 회사를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거래마다의 경제성이 정한다. 두 개의 지갑을 가진 에이전트 하나를 떠올려 보면 된다.

첫 번째 지갑은 기존 카드 레일이다. 토큰화된 카드 자격 증명이며, 에이전트는 소비자의 돈으로 소비자 규모의 구매를 할 때 이 지갑을 꺼낸다. 차지백과 분쟁 권리가 중요한 일반 소매 주문, 규제된 신원 확인이 기대되는 거래, 가치가 사람 단위 규모인 거래다. 카드 네트워크는 토큰화 인프라를 재구축해 두었기 때문에 에이전트는 실제 카드 번호에는 절대 접근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해당 에이전트, 해당 가맹점, 해당 동의에 묶인 '범위가 한정된 토큰'만을 다룬다. 두 번째 지갑은 스테이블코인 레일이다. 인터넷 기반 프로토콜 위에서 디지털 달러로 정산하는 방식이며, 에이전트는 자체 운영 자금으로 기계 규모의 거래를 할 때 이 지갑을 꺼낸다. 다른 에이전트에게 돈을 보낼 때, 소량의 연산력이나 데이터를 사들일 때, 카드 거래의 고정 수수료가 거래 가치를 잡아먹을 만큼 금액이 작을 때다. 선도적인 스테이블코인 프로토콜의 평균 거래 금액은 약 6센트 수준이며, 카드 레일은 그 크기에서는 단순히 도달할 수 없는 가격대다. 둘은 서로의 전쟁이 아니라 분업이며, 시장의 모든 진지한 사업자는 이미 양쪽 모두에 헷지해 두었다. 결제 임원에게 필요한 솔직한 프레임은 '어느 레일이 이기는가'가 아니라 '어느 일에 어느 레일이 합리적인가'이다.

토대 레이어와 한국식 매뉴얼

결제사가 당장 이번 주에 실행해야 할 실무 과제는 표준의 혼란이 정리될 때까지 인프라 구축을 미루는 보수적인 방관이 아니다. 어떤 에이전트가 어떤 기술 사양을 타고 금융망에 노크하더라도 자사의 인프라가 안전하게 승인 토큰을 발급할 수 있도록 '유연한 멀티 프로토콜 결제 게이트웨이'를 부설하는 것이다. 이음새 없는 안방 레일을 다듬을 때 결제망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아키텍처적 핵심은 '제한적 위임장(Scoped Mandate)' 메커니즘의 내재화다. 에이전트에게 고객의 카드 비밀번호나 상시 결제 승인 권한을 무제한적인 '백지수표' 형태로 넘겨주는 방식은 보안상 파탄을 부를 뿐이다. 대신, 지정된 가맹점에서, 특정한 시간 창 안에, 사용자가 사전에 허용한 예산 금액 한도 안에서만 단회성으로 작동하고 무효화되는 '범위 지정형 결제 토큰' 레일을 촘촘하게 깔아야 한다.

나아가 결제망은 기술적 연동을 넘어 사고 발생 시의 '사후 감사 가능성(Auditability)'과 위험 배분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 티메프 사태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 한국은 2025년 12월 16일 공포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법률 제21205호, 제25조의4)을 통해 PG사의 정산대상금액을 금융기관에 신탁·예치하도록 의무화하는 안전망을 구축했다. 다만 외부관리 비율은 단계적으로 상향된다. 2026년 12월 17일 시행 이후 1년차 60퍼센트, 2년차 80퍼센트, 그리고 전액 100퍼센트 외부관리는 시행 2년이 지난 2028년 12월 17일부터 적용된다. 결제사는 이 정산금 외부관리 원칙을 에이전트 자율 결제 환경의 신종 오결제 사고(프롬프트 인젝션 공격으로 인한 사기 결제, 시스템 오류로 인한 청구 금액 왜곡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밀하게 확장 적용해야 한다. 정산 보호의 법적 책임 한도가 장부상에 명확히 그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결제 인프라도 자율 결제의 통로를 과감하게 열어젖힐 수 없다.

두 부류 모두 단 한 줄의 원칙은 같다. 카드 레일은 지금 네이티브로 직접 보유하고, 스테이블코인 레일은 다리와 샌드박스를 통해 닿으며, 크립토 레일로 한 걸음 더 내딛는 속도는 벤더의 과장된 약속이 아니라 규제의 시계가 결정하게 두는 것이 맞다. 더 나아가, 에이전트가 외부의 기만에 속아 오작동 결제를 냈을 때 이를 보상할 책임 한도와 보험 모델을 미리 세팅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네트워크들 스스로가 헷지하는 방식 그대로 헷지하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레일이 향하는 종착점에는, 결제 버튼의 주인이 있다. 앞의 네 책상이 아무리 정확히 움직였더라도, 마지막 손가락 하나가 토글 위에서 멈춘다면 송파의 그 화요일은 오지 않는다.

5. 소비자의 책상

제13·14·15장 참조. 용어집은 부록 E, 사고 유형별 구제 수단은 부록 C에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거실 소파, 자정 직전의 어스름한 불빛 아래서 스마트폰을 고쳐 쥐고 있는 한 여성의 손끝. 이것이 에이전틱 커머스를 둘러싼 거인들의 모든 기술 전쟁과 사법적 입법 장치들이 최종적으로 도달하여 심판을 받아야 하는 가장 값비싼 영토, '소비자의 책상'이다. 소비자는 가트너와 유고브의 글로벌 조사 지표가 보여 준 차분하고 단단한 거부의 벽을 일상의 선택으로 증명하는 행위자다. 대중은 기계가 러닝화 발볼 모양을 분석해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거나 봄철 무타공 커튼의 압축봉 옵션을 4초 만에 비교해 주는 '탐색과 선택' 단계까지는 거부감 없이 기꺼이 마음을 열고 알고리즘의 비서 역할을 환영한다. 그러나 내 계좌의 실물 잔고가 움직이는 마지막 '결제 승인' 경계선에 도달하는 순간, 10명 중 9명의 소비자는 기계에게 구매 권한을 일임하기를 거부하며 멈춰 선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용자의 3분의 1은 에이전트 플랫폼에 자신의 카드 자격증명이나 개인 금융 인증 정보를 등록하는 행위 자체를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실제 돈이 움직이는 경계선 앞에서 본능적으로 지갑을 닫는 이유는 이들이 기술적 혜택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여서가 아니다. '결제'라는 행위가 가진 세 가지 본질적인 위험을 직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선택의 실수는 무료로 되돌릴 수 있지만 결제의 승인은 분쟁과 환불이라는 비용을 수반하므로 공짜로 돌이키기 어렵다(가역성). 둘째, 잘못된 추천이 일으키는 손실은 약간의 시간 낭비에 그치지만 잘못된 결제의 오작동은 알아채지 못한 정기 구독이나 사기 거래로 이어져 통장 잔고 전체를 위협하므로 손실의 상한선이 없다(비대칭성). 셋째, 내 자산에 대한 통제권을 기계에 맡기는 것은 단순한 업무 심부름이 아니라 나의 이름과 재산으로 모든 사후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무거운 법적 '대리권 수여' 행위다. 더욱이 거부하기 힘든 초저가를 앞세웠던 중국 플랫폼들의 유해 물질 스캔들과 개인정보 불법 이전 처분, 그리고 새벽에 내 현관 앞을 지키던 가장 친숙한 거인 쿠팡이 일으킨 사상 최대 규모의 고객 정보 유출 사고를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본 한국 소비자들에게 이 위험은 상상이 아닌 깊은 '디지털 흉터'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소비자가 이번 주 월요일 아침에 자신의 스마트폰 설정 화면을 열고 내려야 할 실무적 결단은, 플랫폼 기업들이 편리함이라는 미끼를 던지며 요구하는 '포괄 동의와 백지수표형 접근 권한'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시스템의 편의성에 취해 안방 금고 열쇠를 통째로 넘겨주는 대신, 기계 대리인이 활동할 수 있는 안전한 '신뢰의 한도'를 소비자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어야 한다. 자율 쇼핑 설정을 열고, 위험이 극도로 낮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생필품(예: 매주 주문하는 우유, 요거트, 고양이 사료 등)에만 제한적으로 결제 권한을 수여하는 토글을 켜두되, 한 번도 거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판매자로부터 물건을 사거나 단일 결제 금액이 사전에 설정한 임계점(예: 3만 원)을 단 1원이라도 초과하는 고관여 구매의 경우에는 기계가 독단적으로 결제 대금을 인출하지 못하고 반드시 내 눈앞에 최종 생체 인증(지문·안면 인식) 화면을 띄워 인간의 개입을 구하도록 '단계적 신뢰 모델'을 세팅해야 한다. 내 금융 자산의 최종 제어 장치는 결코 소프트웨어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임을 명확히 하는 것만이 소비자가 취해야 할 유일한 방어 업무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짚어 두자. 한국 소비자가 까다로운 것은 시장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 있다. 까다로운 소비자가 견뎌 낸 시스템은, 더 너그러운 소비자가 견딘 시스템보다 단단하다. 그러므로 소비자가 토글 앞에서 망설이는 그 시간은 시장 전체의 신뢰 인프라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망설임은 게으름이 아니다. 신뢰를 거두는 것 또한 권리다. 한 번 켠 토글은 영원히 켜져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 거래가 한 건이라도 발견되면 즉시 토글을 끄고, 그 거래 내역을 가지고 카드사·플랫폼·필요하면 한국소비자원에 분쟁을 제기할 수 있다. 그 권리를 행사하는 일은 기술 거부가 아니다. 잘못 다루면 자신을 해할 수 있는 자본을 견제하는 성숙한 시민의 권리다.

소비자가 손가락 하나로 신뢰의 한도를 그리는 동안, 그 한도 너머의 영역에서 또 다른 책상이 일을 한다. 다섯 책상이 내린 결정들이 종이 위의 약속으로 변환되는 자리, 자문 변호사의 책상이다. 그 책상이 없으면 앞선 다섯 책상의 결정은 사고 한 번에 흩어지고 만다.

6. 자문 변호사의 책상

제15·18·19장 참조. 계약·리스크 점검 체크리스트는 부록 C에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 타운과 대형 법률 자문사의 기업 자문실 책상. 월요일 아침 스탠드 불빛 아래 놓인 서류 가방 안에는 심각한 법적 진공 상태와 책임의 공백이 들어차 있다. 인공지능 쇼핑 에이전트가 주인의 자산을 활용해 스스로 상거래 계약을 맺고 대금 정산을 자율적으로 집행하는 이 새로운 분야는, 한국의 어떤 일류 로펌이나 정책 자문사도 의미 있는 자문 트랙 레코드를 갖고 있지 못한 비어 있는 영역이다. 2026년 1월 22일 시행된 한국의 인공지능기본법(법률 제21311호)은 고영향 인공지능의 지정 의무와 투명성 고지 책임, 그리고 의무 위반 시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라는 가볍고 선언적인 벌칙 규정만을 명시하고 있을 뿐, 실제로 상거래 계약을 대행하는 쇼핑 에이전트 분야의 구체적인 책임 분담과 구제 방안은 조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과 민법 역시 거래 행위의 당사자가 화면을 직접 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자연인(인간)이라는 오래된 가정 위에 서 있어, 기계의 자율적 오결제나 금융 사고 책임을 시스템 소유주와 대리인 중 누구에게 귀속시킬 것인가는 실정법상 명쾌한 정답이 없다.

따라서 법률 자문가들이 이번 주 월요일 아침에 완수해야 할 실무는 성문법이 고도화되거나 사법부의 판례가 축적될 때까지 소송 법리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며 기다리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다. 정리가 된 법리가 없는 자리에서 정답을 만들어 냈던 가상자산 거래소 파산 절차의 경험, 이용자 자산의 보관과 배당의 경계를 미리 그어 둔 문서의 품질이 분쟁의 승패를 갈랐던 인접 영역의 누적된 시선이 지금 이 자리에 쓰여야 한다. 변호사들은 생태계의 결합 주체들(에이전트 개발사, 거대 플랫폼, 결제 대행사, 입점 판매자)을 대리하여 이들이 상호 체결할 '서비스 수준 협약(SLA)'과 소비자 대상 '이용약관'의 조문들을 사적 계약의 원칙에 따라 처음부터 정교하게 직조해야 한다.

의견서와 계약서에 채워 넣어야 할 실무 조항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정직하게 구동되던 에이전트가 제품 페이지나 평점 후기 내부에 숨겨진 기만적 명령문, 즉 기계의 판단을 속이는 '프롬프트 인젝션' 공격에 현혹되어 사용자의 금융 자격증명을 외부 해커 서버로 전송하거나 사기 거래를 자율 승인해 버렸을 때, 이 사고의 민사상 최종 대금 청구서가 어느 주체의 장부로 가야 하는지 책임의 한계를 명확히 구획해 주어야 한다. 기계의 암호학적 디지털 위임장 데이터 한 조각이 사법 절차에서 어떤 표현대리적 효력과 증거 능력을 갖는지, 사고 발생 시 자금 인출을 실시간 동기화하여 동결할 법적 이행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지 계약서 내부에 정밀하게 그어 두어야 한다. 국가의 법 제도가 혁신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진공 상태 속에서, 계약서라는 종이 위의 아키텍처를 통해 신뢰가 배신당했을 때의 피해 범위를 선제적으로 좁히는 것만이 자문 변호사가 취해야 할 실무의 본질이다.

이 책상의 일은 한 회사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장 전체가 쓸 수 있는 모범 약관, 모범 SLA, 모범 분쟁 처리 절차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다른 다섯 책상의 결정이 사고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이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한 회사의 면책 문서가 아니라, 한국 시장 전체가 공유할 신뢰의 문법이다. 그래서 이 책상에 가장 먼저 앉을 사람은 에이전트를 처음 보는 변호사가 아니라, 권한이 시스템의 경계를 넘는 그 한 마디에서 사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미 본 변호사다.

주석

본문 인용 표기 및 서술 방식은 앞부분 ‘출처에 관한 노트’의 원칙을 따른다. 이 장은 보고 형식이 아니라 처방 형식이다. 앞 장들의 분석을 권고된 행동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이 장이 ‘현재의 사실’, 즉 규정, 법원 판결, 시장 수치를 진술하는 자리에서는 그 사실이 이 책의 다른 부분과 동일한 기준으로 출처화·등급화되어 있으며 이 책의 사실 감사를 통과했다. 이 장이 행동 방향을 ‘권고’하는 자리에서는 그 권고가 저자들의 분석이며 사실이 아닌 분석으로 식별되어 있다. 그리고 현장이 진정으로 미정인 자리에서는 본문이 그 미정 상태를 직접 밝힌다. 주석이 아니라.

1. 사전 지정형 플랫폼 독점 규제 입법의 보류, 그리고 새 본 법률을 통과시키는 대신 이미 제정된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을 확장하는 전략의 채택은 2026년 중반 시점의 규제 기조를 반영한다. 다섯 결단의 순서, 주관 부처, 법적 수단은 제18장에 정리된 제정된 법령 목록과 1차 규제 자료에 기반한 저자들의 분석이다. 어느 결단이 새 본 법률 없이도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은 저자들의 분석이며, 그렇게 표시되어 있다.

2. 2025년 10월 16일 대법원이 자사 우대 사건(2023두32709)에서 원심을 파기환송하고,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차별행위 부당성에 대한 공정위의 입증 문턱을 끌어올린 사실은 1차 법원 자료다. 판결문 본문에는 과징금 액수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책은 금액을 단정하지 않는다. 그 판결이 플랫폼이 운영하는 쇼핑 에이전트에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해석은 저자들의 분석이다.

3. 개인정보 보호법 제35조의2 전송요구권의 제3자 전송 대상은 현행 시행령상 보건의료·통신·에너지 세 분야로 한정되며, 유통·상거래는 전송 대상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1차 시행령 확인). 유통은 정책 논의에서 향후 확장 후보 분야로 거론되어 왔을 뿐 확정된 도입 시점이 없으며, 유통을 제4 전송 분야로 신설 지정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라는 권고는 저자들의 분석이다. 제14장 참조.

4. 전자금융거래법 정산대상금액 보호(제25조의4, 법률 제21205호, 2025년 12월 16일 공포, 2026년 12월 17일 시행)는 1차 규제 자료다. 외부관리 비율은 부칙 제2조에 따라 단계 상향되어, 시행 1년차 60퍼센트, 2년차 80퍼센트, 전액 100퍼센트는 시행 2년 경과일(2028년 12월 17일)부터 적용된다. 따라서 "2026년 12월부터 100퍼센트 외부관리"는 부정확하며, 이 책은 단계 적용을 명시한다. 앞 장에서 언급한 2024년 플랫폼 정산금 증발 사고에 대한 입법적 대응이다.

5. 한 카드 네트워크의 에이전트 사전 준비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린 한국 카드 발행사들(2026년 4월 발표)과 선도적 크립토 레일 표준화 단체에 창립 회원사 자리를 가진 단 하나의 한국 결제사는 1차 자료 또는 기업 1차 공시 자료다. 한국 최초의 네트워크 인증 에이전트 거래를 특정 한국 카드 발행사에 귀속시키고 특정 2026년 3월 일자를 거론하는 별도 유통 자료는 어떤 1차 자료로도 교차 검증되지 않아 의도적으로 이 책에서 제외했다. 교차 검증된 사건은 모빌리티 가맹점과 토큰 인프라 제공사가 관여한 거래이며, 한국 카드 발행사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출처를 댈 수 없는 발행사 이름을 거명하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6. 결제 레일 수치들, 즉 선도적 스테이블코인 프로토콜의 평균 거래액 약 6센트, 에이전틱 결제 표준들과 그 후원사·일자는 부록 D에서 출처화·등급화된다. 부록 D에서는 전망은 전망으로 표시되고, 회사 자체 보고 수치는 그렇게 식별된다. 표준들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계층으로 쌓인다는 구조적 주장(도구·컨텍스트, 체크아웃, 결제 권한 부여, 네트워크 신원)은 저자들의 종합이며, 각 표준의 1차 문서와 대조해 검증되었다. 시장 레일 다리에 관한 사실, 즉 카드 결제와 비트코인 라이트닝 정산을 잇는 다리는 이 책 사실 감사에 따라 정확한 제공사에 귀속되며, 일부 2차 해설에서 유통된 짝짓기에 귀속되지 않는다.

7. 8,149개 한국 온라인 상점, 거래 4,467만 건을 분석해 알고리즘 큐레이션이 가장 작은 판매자를 가장 크게 끌어 올렸음을 발견한 연구는 명명된 학술 연구이며 측정·일자가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이 직접 다룬 ‘기계 가독성 세금’ 우려를 ‘확인’하는 자료가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자르는’ 자료로 제시되어 있으며, 그 세금을 실제로 짊어지는 판매자 부류는 본문에서 명확히 언급된다.

8. 정형 데이터 토대(상품 어휘와 글로벌 상품 식별자), 경쟁 중인 체크아웃 프로토콜들, 그리고 프로토콜 경쟁이 미정이며 매달 자체 버전을 갈아 끼운다는 경고는 표준들의 1차 문서에 근거한다. 판매자 작업 순서는 저자들의 분석이다. 제17장 참조.

9. 본문에서 묘사된 소비자 권리 — 자동화된 결정 대응권과 일상적 에이전트 구매에 대한 그 권리의 검증되지 않은 적용 범위, 전자상거래법상의 7일 청약철회권, 도용·차지백 보호, 2026년 한 네트워크의 에이전트 구매 보호 조항과 그 조건, 국가 소비자 기구의 피해 구제와 분쟁 조정 경로 — 는 1차 규제 자료와 회사 자료다. 정직한 한계 — 권한 부여받은 에이전트가 단순히 잘못된 물건을 산 경우의 책임을 정면으로 배분하는 한국 법이 없다는 사실 — 는 영구적 조건이 아니라 현재의 법 상태로 진술된다.

10. 법률 자문 영역의 최전선(한 건의 에이전트 거래에 여섯 법 체계가 합류한다는 사실, 새 의견서·계약 카테고리, 회사의 챗봇이 한 말에 대해 회사에 책임을 물은 심판소 선례, 한국 국내대리인 의무화, 기계의 의사 표시에 대한 미답의 민법상 질문)은 발간된 로펌·규제·심판소 자료에 근거한다. 이 절은 일반 시장 용어로 작성되며 특정 로펌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는다. 회사별 자료는 부록 안에 직업 윤리 게이트 뒤로 분리되어 있으며, 이는 이 책이 저자들의 소속을 본문 전체에서 다뤄 온 방식과 일관된다.

부록

부록은 본문보다 빨리 낡는 것들을 모아 둔 곳이다. 본문이 논지를 맡고, 부록은 참조를 맡는다. 여기 실린 모든 사실과 수치는 본문의 해당 장에서 검증된 것이며, 출처 기재 원칙은 책 머리의 '출처에 관한 노트'를 그대로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