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가 새로운 기술 전환기를 맞이했을 때, 그것이 흐름을 선도할지 그저 따라갈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대개는 기술이 어디서 발명되는지, 그리고 자본이 어디로 모이는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대한민국이 그 운명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드문 예외다. 앞 장들에서 살펴본 이유 때문이다. 한국은 언론의 자유가 작동하는 민주주의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완성도 높은 결제 레일, 검색 광고 의식, 한 지붕 아래 통합된 시장 구조, 대기업 간의 치열한 실물 경쟁이라는 조건을 함께 갖추고 있다. 이는 지금 이 시점에 한국이라는 영토에 주어진 드문 선물이다. 다만 이 선물에는 짧은 유효 기간이 있다. 외부에서 다 만들어 놓은 규칙을 수입해 오기 전에, 한국이 에이전틱 커머스의 규칙을 자국에 유리한 방식으로 주체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열려 있으나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이 문이 닫히기 전에 한국 정부와 사회가 완수해야 할 구체적인 선택의 갈림길은 분명히 짚을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그 다섯 가지 결단을 제시하고, 끝으로는 왜 이 올바른 결정들이 한국의 정치적 현실에서 실제로 관철되기 어려운지에 대한 솔직한 진단을 함께 둔다.
시간표부터 보자. 모든 설계의 성패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가에 달려 있고, 솔직히 말해 “시간이 거의 없다.”
에이전트가 가맹점과 대화하고 결제 대금을 승인하는 글로벌 통신 규격과 기술 표준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부분 미국의 테크 랩과 글로벌 카드사 주도로 작성되고 있다. 결제 레일도 한국 땅에 지금 깔리고 있고, 거대 플랫폼들은 소비자의 쇼핑 비서를 선점하기 위한 다툼을 지금 벌이고 있다. 이 흐름은 10년 뒤의 일이 아니라 향후 2~3년 안에 완결될 빠른 레이스다. 한번 고착된 기술 표준은 시멘트처럼 빠르게 굳는다. 그 규격 위에 시스템을 구축한 수많은 기업이 기득권 침해를 막기 위해 규격 변경에 강하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타이밍이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쇳물이 아직 끓고 있는 시간에 적극적으로 끼어드는 국가는, 자국의 특수한 요구 사항을 표준 안에 새기고 자국의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할 메커니즘을 설계 단계에서 심어 둘 수 있다. 반면 시멘트가 굳을 때까지 방관하는 국가는 다른 나라가 지어 놓은 표준 규격을 별다른 저항 없이 수입할 수밖에 없고, 심지어 다른 나라가 자국 기업의 이익에 맞춰 설계한 금융·통상 규칙 아래 자국 시장을 끼워 맞추는 일을 겪게 된다. 한국은 지금 그 쇳물이 끓고 있는 시간의 한복판에 있다. 그러나 2~3년 뒤에는 이 문이 닫힐 것이다. 기술 도입을 게을리해 발생하는 진짜 비용은 단순히 최신 기능이 늦게 들어오는 차원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규칙 제정자’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흘려보내고, 다른 나라가 던지는 가이드라인을 받아쓰는 ‘규칙 수입국’으로 자리 잡는 결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한국이 지금 결단해야 할 구체적인 실무 과제는 다음과 같다. ‘AI 시대를 선도하자’는 막연한 구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섯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 중 어느 것도 미국 통상 현안에 막혀 멈춘 플랫폼 규제법 통과에 발목 잡힐 필요가 없는, 당국의 행정 레버 안에 있는 카드들이다.
첫째, 에이전트 시대를 위한 ‘대금 정산 및 에스크로(결제대금 예치) 제도’의 개편이다. 한국은 티메프 사고라는 혹독한 매를 먼저 맞은 대가로, 천문학적 비용과 법적 갈등을 치르며 중개 플랫폼 내 정산금 증발을 차단하는 정산대상금액 외부관리 의무화 제도를 완성했다(전자금융거래법 제25조의4, 2026년 12월 17일 시행, 외부관리 비율은 60→80→100퍼센트로 단계 상향되어 전액 적용은 2028년 12월부터). 소상공인의 자금을 지키기 위한 정당하고 훌륭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 정산 보호 규칙은 여전히 ‘인간’ 소비자가 주문서를 작성하고 중개 플랫폼이 그 정산금을 일정 기간 보관하는 모델을 전제로 한다. AI 에이전트가 주체적으로 여러 상점에서 동시에 대금을 집행하거나, 사전에 부여받은 포괄적 결제 권한을 바탕으로 매일 자율 결제를 실행할 때 그 중간 정산금을 누가 보관하고, 거래 오류나 오작동 시 어떻게 대금을 즉각 되돌리며 책임질 것인가에 대해 현행 법률은 답을 주지 못한다. 한국은 이 정산금 외부관리 원칙을 에이전트의 자율 결제 환경으로 선제적으로 확장 적용해야 한다. 에이전트 결제가 대중화된 뒤 첫 정산 사고가 터져 소상공인 수천 명이 다시 눈물을 흘리며 사후 입법을 공부하기 전에, 지금 규제 설계를 손봐야 한다.
둘째, 에이전트 결제 경계에 대한 당국의 명확한 ‘유권해석 지침’ 조기 배포다. 막힌 국회 입법 절차를 우회해 즉시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카드다. 한국은 에이전트를 위한 새 특별법을 거창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현행법이 기계 비서의 자율 행동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관할 부처(개보위, 공정위, 금융위 등)가 가이드라인과 유권해석을 조기에 내면 된다. 질문은 구체적이며 지금 답할 수 있다. 기계 비서가 사용자를 대신해 결제를 완료했을 때, 그것을 개인정보 보호법상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정보주체의 권리’(제37조의2)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이 조항은 완전 자동화된 결정이 정보주체의 권리·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거부권을 부여하되, 그 결정이 계약의 체결·이행 등을 위해 이루어지는 경우(제15조제1항 제1호·제2호·제4호)에는 거부권을 배제한다. 에이전트 구매는 대개 사용자 본인이 요청한 계약의 이행에 해당하므로, 소비자는 결정을 거부하기보다 그 결정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제2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자신의 기계 비서가 왜 이 상점을 선택했는지 알고리즘의 설명을 요구할 수 있는가. 구매 행위자가 사람이 아닌 소프트웨어 비서일 때, 전자상거래법상의 서면 의무 고지와 청약철회권은 기계가 결제를 완료한 시점부터 기산되는가, 아니면 사용자가 퇴근 후 스마트폰을 열어 그 구매 내역을 인지한 시점부터 시작되는가. 기계가 여러 가맹점에 분산 구매를 실행할 때, 현행 세법과 결제망상 ‘거래 가맹점(merchant of record)’ 책임은 어느 결제 게이트웨이가 지는가. 이 중 어느 것도 새 법률 통과가 필요하지 않다. 부처의 행정 유권해석만으로 가능하다. 이를 조기에 분명히 정리하는 부처의 판단이 있다면, 한국의 에이전틱 커머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며 투자가 활발한 환경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셋째, ‘플랫폼 중립성’에 대한 정면 결단이다. 대법원이 네이버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난이도가 크게 올라간 가장 아픈 결정이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사실은, 한국의 에이전트 권력이 검색·유통·결제를 함께 가진 거대 플랫폼의 품 안에서 잉태된다는 점이다. 피할 수 없는 질문은 이것이다. 거대 플랫폼이 출시한 에이전트가, 검색 순위를 넘어 아예 물건을 골라 결제하는 순간에 자사 계열사 상품이나 유료 광고주 지면 상품만을 우선적으로 채워 넣는 자사 우대를 할 때 이를 법적으로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AI의 깊은 신경망 알고리즘이 내린 블랙박스 선택을 규제 당국이 어떻게 들여다보고 편향성을 입증해 낼 것인가. 대법원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차별행위 부당성을 인정하려면 공정위가 경쟁제한 효과의 구체적 우려와 그 의도·목적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했고(2023두32709), 이로써 공정위의 입증 부담은 크게 무거워졌다. 사건은 파기환송되어 아직 종결되지 않았으며, 플랫폼 독점 금지법 조항은 외교 압력에 막혀 있다. 결국 한국은 지금 주체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법원이 높여 둔 입증 문턱과 플랫폼 규제 보류라는 방치 속에서 플랫폼 에이전트가 알고리즘으로 자사 상품을 우선 노출하는 미래로 떠밀려 가고 있다. 이 족쇄를 채울 것인지 말 것인지 주체적으로 결단해야 한다.
넷째, ‘유통·커머스 분야 마이데이터(데이터 전송요구권)’의 신설 지정이다. 한국 정부의 자체 결단만으로 당장 집행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다. 한국은 소비자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원하는 제3자에게 전송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개인정보 보호법 제35조의2)를 마련해 두었으나, 현행 시행령상 제3자 전송 대상으로 지정된 분야는 보건의료·통신·에너지 세 분야뿐이고, 유통·상거래 분야는 전송 대상으로 지정조차 되어 있지 않다. 에이전트는 지금 한국 영토에 들어오고 있다. 유통 분야가 전송 대상에서 빠져 있는 한, 소비자는 자신의 구매 이력을 다른 에이전트로 옮길 수 없고, 그 이력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 거인의 데이터 방어벽 안에 갇혀 있게 된다. 시행령 개정으로 유통·상거래를 제4의 전송 분야로 신설 지정하는 결단은, 거대 독점 플랫폼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는 중소 스타트업 중심의 ‘소비자 주권형 독립 에이전트’들에 산소를 공급하고 플랫폼 락인을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이다. 유통은 정책 논의에서 향후 확장 후보 분야로 거론되어 왔을 뿐 확정된 도입 일정이 없으므로, 이 결단의 본질은 일정의 단축이 아니라 지정의 신설이다. 이 지정이 없는 한, 이 책이 말해 온 한국의 완결형 루프라는 구조적 강점은 플랫폼 자신의 에이전트에게만 허락된 강점에 머문다. 같은 구조가 공공의 이점이 되는가, 데이터를 가둔 폐쇄적 해자에 그치는가를 가르는 분기점이 바로 이 시행령 한 줄이다.
다섯째, 현재 전 세계 어디에도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은 ‘에이전트 책임 프레임워크’의 수립이다. 기계 비서가 주인의 카드로 엉뚱한 물건을 엉뚱한 가격에 사 버렸거나 오결제를 실행했을 때, 이 사고의 청구서는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판매자인가, 에이전트 개발사인가, 결제 게이트웨이인가, 사용자 본인인가. 대한민국 법률은 이 질문에 침묵하고 있다. 사용자가 AI 기계 비서에 자사의 결제 권한을 맡기기 위한 단 하나의 전제는 신뢰다. 사고 발생 시의 법적 책임이 어떻게 분담되는지 규칙조차 없는 상태에서, 개별 소비자가 사고를 당한 뒤 수년간 법원에 매달려 판례를 만들어 가도록 두는 시장에서는 의미 있는 혁신이 자라기 어렵다. 이 사고 책임을 규정하는 정밀한 규칙의 조기 수립이야말로 기술 혁신을 막는 규제가 아니라, 혁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다. 다섯 가지 결단 가운데 이 책임 프레임워크가 이 책이 줄곧 말해 온 ‘신뢰의 관문’을 여는 핵심 열쇠다.
한 걸음 물러서 다섯 가지 결단을 함께 보면 이들이 공유하는 거대한 지향점이 보인다.
이 다섯 결정은 단순히 한국 시장의 소비자를 지키는 규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에이전틱 커머스 기술 표준의 공동 설계자로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이다. 에이전트 결제 표준과 통신 규격은 아직 굳지 않은 점토 상태이며, 그 테이블의 창립 멤버 자리에 이미 한국의 거대 핀테크 지갑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이 정산 안전 규칙, 책임 소재 규정, 중립성 방침, 데이터 전송 시점을 조기에 글로벌 호환 규격으로 완성해 자국 시장에 적용해 둔다면, 글로벌 표준 기구는 한국이라는 정밀하고 큰 단일 IT 테스트베드의 선제 규제 표준을 글로벌 기술 규격에 반영하지 않기 어렵다. 시장 규모와 성숙도를 앞서 가진 국가가 먼저 정한 규칙은 표준 기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업계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이 결단 없이 2~3년을 흘려보내면, 미국과 중국의 비즈니스 이해관계에 맞춰 설계된 외산 규격이 한국 시장을 덮을 것이며, 한국의 중소 소상공인과 소비자는 그 규격의 하위 부품으로 끼워 맞춰질 위험이 있다. 이것이 주체적인 기술 표준 리드와 기술 수입 사이의 차이다. 허울 좋은 구호가 아니다. 우리가 궤도의 규격을 만드는 선도국이 될 것인가, 아니면 깔린 철로 위에 얹혀가는 종속국이 될 것인가의 차이다. 허락된 시간은 2~3년이며, 결단해야 할 무기는 같은 다섯 가지다.
이제 이 장이 약속한 두 번째 솔직함, 즉 처방을 내놓기 전에 한국을 가로막고 있는 실재하는 장벽을 짚을 시간이다.
솔직히 말해, 현재 한국의 정치적·외교적 여건에서 이 결정들이 순조롭게 관철될 가능성은 낮다. 이유는 이 책이 차례로 보여 준 그대로다. 가장 강력한 입법 무기였던 사전 통합 플랫폼 규제법은 한국 정부의 의지 부족 때문이 아니라, 미국 워싱턴 정가의 통상 압박과 한미 안보 협상의 긴장 국면 탓에 규제 기관 스스로 한 발 물러서며 멈췄다는 점은 앞 장에서 다뤘다. 국회의 입법 일정은 정쟁으로 갈라져 있고, 선거철의 정치 공학은 유동적이다. 정책 결정의 밑바닥에는 또 다른 해묵은 저항 요인이 있다. 혜택과 비용의 비대칭성이다. 규제를 가했을 때 거대 플랫폼이 지불해야 하는 집중된 비용과 미국과의 마찰 비용은 크고 시끄러운 반면, 규제 방어벽이 조용히 완성되었을 때 수많은 영세 판매자와 일반 소비자가 누리는 혜택은 분산되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 결단 가운데 기술적으로 고난도의 해법이 필요한 과제는 없다. 정치적 불모지의 카드들이며, 이 중 일부는 워싱턴의 통상 서한을 다시 부를 수 있는 뇌관을 안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왜 이 다섯 과제가 지금의 난관 속에서도 가장 정교하게 고른 해법인지 그 설계를 다시 봐야 한다. 다섯 선택지 중 정산 제도 개편, 행정 유권해석 지침, 유통 분야 데이터 전송 신설 지정, 사고 책임 프레임워크라는 네 가지 카드는, 미국 통상 장벽에 막혀 멈춰 있는 그 거대한 ‘통합 플랫폼 독점법’을 통과시키지 않고도 각 행정 부처가 이미 가진 시행령 개정과 현행법 유권해석 권한만으로 즉시 진행할 수 있다. 오직 자사 우대 방지 결단 하나만이 거대 플랫폼 독점 금지법의 운명과 함께한다. 그리고 이 자사 우대 문제조차 현행 공정거래법상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규제와 심사 지침의 집행으로 일부는 다룰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정직한 한계가 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으로 끌어올린 입증의 문턱은 행정 지침만으로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침 개정은 심사의 틀을 다듬을 뿐이고, 문턱을 실제로 넘는 일은 경쟁제한 효과를 구체적으로 증명할 경제분석 방법론의 축적,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입법의 몫이다. 이 책이 다섯 결단 가운데 이것을 가장 아픈 결단이라 부르는 이유다. 장벽은 거대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정치적·통상적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그 안에서 영리하게 집행할 수 있는 공간은 분명히 있고, 본 장이 제시한 처방은 그 공간을 활용하는 현실주의적 해결책이다. 네 가지 카드로 방어벽을 먼저 두텁게 쌓고, 다섯 번째 쟁점을 향해 공세적 유권해석을 적용하며, 허락된 2~3년의 시간 동안 우리만의 레일을 먼저 까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 현실주의적 해법을 실제로 선택할지, 이 책은 예언하지 않는다. 다만 셈은 해 둘 수 있다. 그 길은 실재하고, 드는 비용은 시행령 몇 줄과 유권해석 몇 건이다. 그 길을 흘려보냈을 때 치러야 할 값은 그보다 훨씬 크다. 에이전틱 커머스에 가장 좋은 토대를 갖춘 나라가, 주어진 시간을 지난 사고의 뒤처리에만 쓰다가, 소비자 시장의 규칙을 외국 기계에 내어 주게 된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으면 저절로 찾아오는 미래가 바로 그것이다.
이 다섯 결단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따로 있다.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다섯 가운데 넷은 국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 통상 마찰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각 부처가 이미 손에 쥔 권한만으로 당장 시작할 수 있다. 한국은 매를 먼저 맞은 대가로, 다음 시대가 요구하는 안전망의 뼈대를 이미 세워 둔 나라다. 상처를 수습하느라 만든 장치가 새 시대의 밑돌이 되는 행운은 흔치 않다. 다섯 결단이 하는 일은 결국 그 우연을 의도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결단들이 미뤄진다면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뜻이 없어서일 것이고, 그 사실은 훗날 어떤 변명거리도 되지 못한다.
다만 이 장의 다섯 결단은 나라가 무엇을 정할 것인가를 그린 지도일 뿐, 누가 어떤 차례로 움직일 것인가까지 일러 주지는 않는다. 규제 당국, 플랫폼, 판매자, 결제사, 소비자, 그리고 자문 변호사. 그 그림을 현실로 옮길 여섯 개의 손은 마지막 장이 맡는다.
결단은 미룬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미뤄진 결단은 남이 대신 내리고, 그 값은 어느 평범한 화요일 밤의 풍경이 되어 돌아온다. 그 밤 문 앞에 놓일 우유가 우리가 정한 규칙을 타고 온 것일지, 남이 정한 규칙을 타고 온 것일지. 그것이 지금 정해지고 있다. 그 화요일 밤이 다음 장이다.
주석
이 책의 출처 기재 방식은 앞부분 ‘출처에 관한 노트’를 따른다. 본 장의 정책 분석과 다섯 과제의 법적 맥락은 앞 장들에서 입증한 사실과 일관되게 상호 참조한다.
2~3년의 기술적 골든타임: 에이전트 기술과 결제 관련 글로벌 통신 규격이 굳어지는 대략 2~3년의 시간 창은 제8장(미국 표준 경쟁) 및 제10장(한국 결제망 구축 시간표)에 입증된 분석을 기초로 한다.
정산 안전 입법: 전자금융거래법 개정(2025년 12월 공포, 정산대상금액 외부관리)은 완료되었고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은 국회 계류 중이라는 두 트랙의 비대칭은 제18장 참조. 티메프 사태와 자금 소실 사실은 제3장 참조.
자동화 결정 대응권과 청약철회권: 개인정보 보호법상 자동화된 결정에 대한 거부·설명요구권 및 전자상거래법상 청약철회권의 조항·효력 범위는 제14장 및 제18장 참조. 본 장은 이를 추가 입법 없이 부처가 유권해석으로 확대 집행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플랫폼 자사 우대 입증 기준: 2025년 10월 대법원 판결로 공정위의 자사 우대 입증 기준이 강화된 맥락은 제9장 및 제18장 참조. 플랫폼 공정화법의 입법 지연 상황은 제18장 참조.
유통·상거래 마이데이터: 개인정보 보호법 제35조의2(전송요구권)의 제3자 전송 대상은 시행령상 보건의료·통신·에너지 세 분야로 한정되며, 유통·상거래는 전송 대상 미지정. 유통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전 분야 마이데이터 확산 논의에서 교통·교육·고용 등과 함께 향후 확장 후보 분야로 거론되어 왔으나, 확정된 의무 지정·도입 시점은 없음. 본 장은 시행령 개정으로 유통을 제4 전송 분야로 신설 지정할 것을 제언. 제14장 참조.
에이전트 사고 책임 공백: 현행 법률상 에이전트 자율 결제 사고의 법적 책임이 입법·판례 공백 상태에 있다는 분석은 제15장 및 제18장 참조.
x402 창립 멤버: 한국의 카카오페이가 글로벌 에이전트 결제 표준(x402)의 유일한 한국 창립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제8장 및 제10장 참조.
플랫폼 규제법 통상 외교 변수: 2025년 9월 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한미 통상 외교 여건의 어려움을 공식 인정한 사실은 제18장 참조.